사마리아 여인의 영적 갈망 & 참된 예배 & 전도
예수님은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만남을 통해 이스라엘에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바로 4장에서는 이방인을 향해 복음을 선포하신다. 스스로는 빛 되신 예수님께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늘에서 직접 찾아오셨다. 그리고 또한 스스로는 예배의 자리에 절대로 나올 수 없었던 이방인들에게 직접 찾아가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주시고 예배자로 부르신다. 예수님께서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이끌어 가시며 선포하신 복음과 가르침들:
(1) 여인이 삶에 절망 - 영적 갈망 - 예수님을 만남 - 예수님께서 죄를 다루심 - 예수님을 선지자로 앎 - 영적 진리(복음/예배)를 깨달음 - 예수님을 메시아로 앎 - 자유를 얻음(구원) -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됨
(2) 이방인에게 복음이 선포됨: 막힌 담이 허물어짐
(3) 참된 예배의 의미: 영과 진리로
(4) 복음 전파의 방법: 참된 자유 자가 되어 자신이 실제 경험하고 얻은 것을 나눔. 스스로 달려감, 입을 열어 외침, 전함 à 여인의 전함을 듣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자들이 믿는 자가 됨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유대인이라면 마땅히 돌아서 가야 하는 사마리아를 일부러 통과해서 가신다.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수가라는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셔서 사마리아 여인을 기다리셨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여인을 보시고 물을 달라고 하신다. 여인은 있을 수 없는 예수님의 행동에 유대인이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는지 묻는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0)
유대인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물과 자신에 대해 알려주시려고 한다.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3-14)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5)
예수님은 우연히 쉬어가시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생수에 대해 말을 건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죄로 파괴된 삶과 마음속의 상처와 낙심과 갈망을 알고 계셨고 그녀에게 필요한 치유와 소망과 평안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먼저 해결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죄의 묶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녀의 삶과 내면의 문제와 고통의 근원인 “죄”의 정체가 빛 가운데로 드러나야 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아마도 남편으로부터 삶의 의미와 행복과 평안과 안전을 바랬을 것이다. 죄 된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편을 우상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5명이나 바꾸었어도 그 남편들조차 자신만을 사랑하는 죄인이었기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을 것이 당연하다. 5명의 남편과 살면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에 빠졌을 것이고 그 절망이 그녀로 하여금 영적인 것에 관한 관심과 갈망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16-17)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여인의 깊은 곳에서 그녀를 옭아매고 절망 가운데 죽음으로 끌고 가던 죄를 빛 가운데로 바로 드러내시는 것과 그 앞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의와 권위와 말씀의 능력으로 비로소 그녀가 우상 삼았던 남편이 없다고 고백함을 통해 그 묶임에서 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1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1)
여인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자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바로 예배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었던 영적 갈망이 터져 나왔다. 또한 그녀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도 기다리셨다는 듯이, 여인의 갈망을 다 아시고 다 채워주겠다는 듯이 바로 여인에게 예배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풀어주신다.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복음을 선포하신다!
유대인에게서 시작되고 간직되어 온 구원이 이제 이방인들에게로 흘러갈 것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아버지가 되실 것과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것이라는 진리를 알려주신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5-26)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선지자로 알았던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주님과의 만남, 메시아와의 만남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평범할 수 없다. 그분을 진심으로 만나면 죄의 종노릇 하던 것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받게 된다. 비로소 영이 살아나고 영생을 얻게 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게 되고 영적 세계의 진리들과 모든 신령한 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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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3-24)
거듭남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비로소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구약에 나타난 제사를 통해 그림자로 보여주셨던 예배의 참모습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드러났다. 그리고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새 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셨다. 영으로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 그 말은 영이 깨어있지 않고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예배도, 오랜 시간을 예배하는 것도, 잘 짜인 예배의 순서나, 화려함이나 그 어떤 사람의 노력으로도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뜻이다. 오직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영”은 성령님을 의미한다고 많이 해석하지만, 성령님을 뜻하는 The Spirit이 아닌 소문자 spirit으로 원어에 기록된 것을 통해 사람에게 죽었던 영을 새로 주신 각 사람 안에 있는 그 사람의 “영”으로 예배한다는 뜻이 더 맞는 것 같다. 영이신 하나님과는 영으로만 교통하며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의미하는 것도 맞겠지만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 각자가 영이신 하나님과 자신의 영으로 교통하며 경배하며 영광 돌리는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이 반드시 있어야 하기에 각자의 영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예배는 공동체로 드려지는 것도 맞다. 영으로 예배하는 각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 안에 하나 되어 함께 예배하며 교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영으로 예배할 때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영 안에서는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는, 지구 어딘가에서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과 하나로 예배드릴 수 있다.
아담으로부터 죄로 인해 “영”이 죽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성경의 예언과 성취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 영을 받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주일 예배를 포함해 모든 예배를 드릴 때 각자의 영이 깨어 영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는 것, 또한 각자의 영으로만 성령님과 교통하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영적으로 무지한 성도들이 많은 것 같다.
한가지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은 영과 혼과 육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세분이면서 한분이신 것 같이 영, 혼, 육도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영과 혼과 육이 하나로 나를 이룬다. 하나이지만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분명하게 구별되고 서로 끊을 수 없게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는 각각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특별히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면서 새 영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 안에 영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알고 배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 세계의 모든 것들과 우리는 영으로만 교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영을 받았을지라도 영이 깨어 있지 않으면 영적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진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도 교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통해 영에 대해 잘 알려주셨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이 진리에 대해 잘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을 허비한 후에야 말씀을 읽으며 이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진리”는 말씀인 예수님이시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 반대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어떤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받아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갈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고 아버지와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
예배는 살아계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적인 만남과 경배와 높임과 영광이 예배드리는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까지 상달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 하늘과 땅 모든 곳에, 모든 만물들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또한 우리가 예배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뜻인 구원이 이루어진 결과고 열매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로 인해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이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께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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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28-30)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녀를 가두었던 죄에서 자유를 얻고 사람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수치스럽던 그래서 감추어야 했던 자신의 죄악된 삶을 도구 삼아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힘껏 외쳤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전도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녀에게 가서 사람들에게 나누라고 하시지도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 자유를 경험한 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과 열매가 전도인 것이다. 훈련받지 않아도 자신이 갖게 된 것을, 경험한 것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전도이고 선교이다.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왔다. 누구의 말을 듣고 나온 것인가? 수가라 하는 동네에서 그 여인은 어떤 사람으로 취급받았을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어떻게 수군거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녀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고 그 외침을 듣고 따라 나왔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외치는 자의 능력도 언변도 신분도 아닌 복음 자체의 능력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의 생명력이다. 생명은 생명을 낳는다.
전도와 선교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은 전도하고 선교하는 자들의 영적 상태이다. 전도가 멈추고 선교가 식어가는 교회가 가정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은 교회의 생명력이다. 배워서 지식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새 생명으로 살리고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을 소유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처럼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 나가 외치게 되는 전도와 선교가 일어나야 한다.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들로 또한 믿어 구원받게 하는 전도의 원동력은 내 안에 살아 뛰는 생명력이어야 한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42)
구원은 각자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그분을 영접함으로 거듭나는 사건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도는 먼저 구원받은 자들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그분께로 인도 하는 것까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생명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은 각자가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구원이다.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은 자 안에서 새 생명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고 그분을 향한 사랑이 커지고 그분의 뜻을 알게 되면 생명을 살리는 일이 삶의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바라보면 복음을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전도고 선교이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 것! 진정한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전해지는 하나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