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의 문이라 & 나는 선한 목자라 &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2-4)
예수님께서 목자와 양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양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우리 안에 있는 양을 치는 목자이다. 양 우리의 문을 통하지 않고 우리에 들어가는 자도 있는데 그들은 절도며 강도라고 하신다. 저들은 목자가 아니므로 문을 통해 우리에 들어갈 수 없어서 담을 넘어 몰래 들어가며 저들이 양 우리에 들어가는 이유는 양을 잡아가려는 것이다.
목자가 양 우리 곁으로 가면 양 우리의 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문을 열어 목자로 양 우리에 들어가게 한다. 목자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양 우리에서 밖으로 나온다. 그러고는 앞서가는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그를 따라간다. 양들은 신기하게도 자기들 목자의 음성에만 반응할 뿐 그 외 다른 어떤 사람의 음성은 듣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음성을 들으면 그를 따르지 않고 도망간다.
예수님께서 목자와 양에 관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자들이 예수님의 이 비유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다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7)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고 세 번째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정의하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문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면 구원받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기 때문이다. (9) 예수님만이 양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며 양 떼가 언제든지 맛있는 풀을 뜯게 하실 분이시기에 예수님 문으로만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목자로 오시기 전에 먼저 온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양들을 도적질하러 온 절도와 강도라고 하신다. 다행인 것은 저들이 왔을 때 양들이 목자의 음성이 아니므로 저들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고 하신다. 절도와 강도가 온 이유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제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자신들이 양이며 예수님이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명의 떡, 세상의 빛과 같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양문에 비유하여 알려주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께서 친히 문이 되어 주셔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구원받은 자들은 영적인 풍성함은 물론이고 더 이상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등,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구원받은 자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10절에 구원받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죄로 죽은 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죗값을 치러주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 사함을 받고 그의 부활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생명 곧 영생을 얻어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더 풍성히 주신다고 하신다.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자는 영적 아기와 같다. 아기가 자라듯이 거듭난 자들도 새 생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며 (에베소서 4장 13절)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들을 점점 더 알게 되고 경험하여 풍성히 누리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생명의 삶을 이 세상에서부터 점점 더 충만하게 살게 된다는 뜻이다.
양들에게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양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강도가 있다는 사실도 깨우쳐 주신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도 강도들이 왔었지만, 양들이 듣지 않았다는 말씀도 해주신다. (8) 양들은 목자의 음성만 듣고 따르기 때문에 강도를 따르지 않아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양을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강도로부터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어 문으로 들어오는 양들을 구원해 주신다. 양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음성을 알고 예수님을 따르고 강도를 따르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을 통해 계속 말씀해주신 대로 그 양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예수님에게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저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양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온 강도는 누구일까?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고, 양의 문이신 예수님께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미혹하는 모든 것들일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려는 거짓의 아비, 사탄의 종노릇 하는 자들일 것이고 특별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13-15절에 말씀하시는 유대 영적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일 것이다. 저들은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교인을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도 영적 눈이 멀어 참 진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1)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4-15)
네 번째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자신을 정의하신다. 양문이 되셔서 양들을 구원해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풍성히 주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양을 치는 목자가 되어 주신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다. 돈을 받고 양을 치는 삯꾼 목자가 아니라 양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목자다. 양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자라기를 원하시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며 밤낮으로 보호하며 지키는 선한 목자시다. 삯꾼 목자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양 떼를 치기에 양을 잡아가려는 이리가 나타나면 양 떼를 버려두고 도망간다. 그러니 삯꾼 목자의 양들은 이리에게 물려가고 또 헤침을 당한다. (12) 하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 떼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에 이리가 나타나면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될지라도 이리와 끝까지 싸워 양을 지키신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 떼 각각의 이름을 아시고 이름을 불러주신다. 그리고 양도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해 주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음성도 알아 예수님만 따른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양이 서로를 아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를 아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거듭난 자와 예수님이 서로를 아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 서로를 아는 것과 같다는 뜻이니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인가! 예수님께서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서로 아심은 두 분이 하나로서 서로를 아신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모르시는 것이 없이 완벽하게 친밀하다는 뜻일 것이다. 거듭난 자와 예수님이 서로 아는 것도 예수님과 하나님처럼 둘이 하나로 서로를 안다는 뜻이다. 그것은 또한 거듭난 자와 아버지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라는 뜻도 되지 않는가!! 창조자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15절에 답이 있다. 예수님께서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죽으심에 합하여 죽고 그의 부활하심에 합하여 영생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양자로 거듭나기에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것이다. 거듭난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며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선한 목자가 되어 양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6)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그 우리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양들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보내신 예수님의 양들이라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한 무리로 함께 인도하실 거라 말씀하신다. 지금 양 우리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곧 한 무리가 될 양들은 이방인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지만, 땅끝까지 전파되며,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듭나 예수님의 양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지만 머지않아 이방인들도 구원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으면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민이며 자신들만을 위한 메시아가 오신다고 믿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해석하면 이방인들이 양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이지만 지금, 이 말씀을 읽는 나는 예수님께서 양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유대인들을 떠올린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복음이 이방인들을 향해 퍼졌고 나를 포함한 세상 곳곳에 있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들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나서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다. 저들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며 구약성경만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저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메시아였음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우리 이방인들과 함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될 것이라 믿는다. 로마서 11장 24절의 말씀처럼 유대인들은 감람나무의 원가지이기에 비록 꺾여 나무에서 떨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원가지를 다시 접붙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1장 25~26절에도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7-18)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 목숨을 내어주시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선한 목자가 양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양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시므로 기꺼이 감당하시는 아름다운 순종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저들과 같은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모습만을 볼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은 자신의 아버지이시며 자신 역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주셨지만 아직은 그 진리를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자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죽으실 수 없다. 그래서 목숨을 내어주신 후에 다시 얻으실 것이다. 누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실 권세도 있고 다시 얻으실 권세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주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시는 것에 관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신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19)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시고 양인 자신들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다는 말씀은 좋은데 목숨을 내어줘도 다시 얻을 거라고 하시고, 죽는 권세도 다시 사는 권세도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유대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과 다를 것이 없는 한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미쳤는데 왜 그의 말을 듣느냐고 한다. (20)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귀신이 어떻게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냐고 주장한다. (21)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많은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말씀은 믿을 수는 없지만 그 분의 말씀의 권위와 맹인이었던 자를 보게 하시는 표적 행하심을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무리도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5-26)
겨울이 되어 예루살렘에 수전절(하누카)이 이르렀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계시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아라면 자신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정확히 말씀하시라고 요청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이미 말했지만, 저들이 믿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이셨던 많은 표적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데도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저들이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양은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기에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도 그들을 아신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저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자들이 아님을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들에게 영생을 주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도록 하실 것이며 양들을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기 때문에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수 없고 자신의 손에서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27-2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0)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시는 것보다 더 확실한 답을 주신다. 예수님 자신과 하나님은 하나라고 밝히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그동안 아버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많은 선한 일들을 행하셨는데 그중에 어떤 일로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는지 물으신다. 저들도 모두 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떡과 물고기로 먹여주시고, 날 때부터 맹인인 자의 눈을 보게 해주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늘의 진리들을 가르치셨다. 선하지 않을 일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유대인들은 선한 일로가 아니라 신성모독 죄로 예수님을 치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지도 믿지도 못하는 것은 저들의 영이 죽었기 때문이다. 죄 된 사람이 되어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도리어 대적하는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죄 된 사람들은 진리를 듣고도 믿을 수 없다. 스스로 믿고 구원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이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순종을 통해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4)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6)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거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아리라 하시니 (37-38)
예수님께서 저들의 주장에 성경에 기록된 시편 82편 6절의 말씀을 들어 답하신다. 시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향해 신들(gods)이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메시아의 표적을 행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시는 것이 어찌 신성모독이냐고 반문하신다. 게다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분이시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자신을 믿지 않아도 자신이 행하는 하나님의 일들은 믿으라고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깨닫게 될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도 믿게 되고 예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다.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대화 사이에 보이지는 않지만,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도 못한다. 그 벽은 저들의 죄이다. 진리이고 빛인 예수님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죄의 벽이 있어서 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신성모독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저들은 하나님도 믿지 않는 것이다. 저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과 말씀의 권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임을 알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선한 일만 행하시는 예수님을 미워하며 죽이려고 하는 것은 요한복음 1장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빛이고 저들이 죄인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으로 인해 저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죄로 타락한 죄인은 절대로 스스로 믿어 구원에 이룰 수 없음을 유대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죄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복음 앞에, 진리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유대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더욱 슬픈 사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형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죄로 죽어 사망의 권세 아래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사탄의 아들로 종노릇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그리고 그 은혜 안에 있는 복음 외에는 죄로 죽은 저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 놀라운 이유를 아직은 아무도 모르기에 저들은 다시 예수님을 잡고자 한다. 예수님께서 저들 손에서 피하시고 세례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베푸는 곳에 거하신다. 그곳으로 와서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것들이 모두 맞는다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믿는다. (39-42)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 하나님께 속해 있던 자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과 영적 세계에 관한 가르침은 아직 깨닫지 못하지만,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말씀하시는 권위와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오셨음을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 반면에 유대 영적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말씀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거룩한 영적 지도자들처럼 외식하며 자신들과 사람들을 속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인들이라 예수님도 믿지 않고 도리어 대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