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이 본문의 제목은 항상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라는 것이다. 그것도 어울리는 제목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하신 행동의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예수님께서 이날 장사꾼들과 가축들을 몰아내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정말 깨끗해졌을까? 절대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것을 너무도 잘 아셨다. 예수님께서 정말 깨끗하게 하고 싶으셨던 것은 모든 사람의 “죄”였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러 이 땅에 오셨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예수님은 이 땅의 어두움과 죄를 드러내는 일을 하셨다. 자신의 죄가 보이고, 자신이 죄인임이 깨달아져야 예수님께 나와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죄를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은혜이고! 은혜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 일을 시작하신 이유는 죄의 본질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임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집” (18)으로 만들고 오염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절기마다 성전에 모여 모든 절차에 따라 제사를 잘 지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제사였다. 모양만 있고 중심이 없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이 없는, 거룩함을 잃은 껍데기 제사를 지냈다. 그것은 죄를 먹고 마시는 행위와 같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높아졌다는 뜻이고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합당하고 거룩한 제사를 위해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순종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성전 안에서 제물을 사고파는 장사를 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재물을 탐하는 권력자들의 욕심을 채우는 죄도 있다. “권력과 돈”의 우상이 성전 안까지 파고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예배를 드리며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왕 노릇하며 돈과 세상의 우상들을 쫓아가는 죄를 지으면서도 아무도 그런 죄를 깨닫지도, 회개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8)
자신들을 죽음으로 결박한 본질적인 죄,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죄를 밝히 드러내신 예수님께 유대인들이 도리어 질문했다. 이 질문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니가 뭔데?”라고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드러내신 자신들의 죄는 슬쩍 덮고 그 문제의 자리에 예수님을 앉히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죄”가 주제였음에도 “예수님에게 장사꾼들을 내쫓을 자격이 있는가를 판단하는”것으로 주제를 바꾸면서 도리어 예수님을 죄인 취급했다. 죄인들이 교묘하게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피해가는 방법이다.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방어 기질이다.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마음에 찔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예배를 회복함으로 죄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저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도 못한다. 예수님의 행동을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한 것으로 분해하며 자신들의 죄는 보지 못하고 예수님께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24-25)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유대인들의 이런 행동에 놀라지 않으셨다. 이미 죄 된 사람이 어떠한지를 잘 아셨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의 죄성을 너무도 잘 아셨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음으로 밖에는 죄의 권세를 끊을 수 없음을 아셨기에 도리어 저들을 위해 아파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죄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친히 구세주가 되어 이 땅에 오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19)
예수님은 자신이 대신 죽고 부활의 생명으로 저들을 살리시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음을 아셨다. 죄의 본성에 따라 행하는 저들의 무례함과 무지와 답답함과 괘씸함과 참담함에 대응하지 않으셨다. 아무도 스스로는 죄에서 떠나 참 예배자가 될 수 없음을 아시기에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실 구원의 표적을 말씀하신 것이다. 도저히 답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전 된 자기 육체를 내어주시는 것으로 저들을 살리시겠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물론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상대하는 사람들은 영이 죽은 죄인들이었다. 영적 세계에 관해, 영적 진리에 대해 알지도 깨달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어둠과 죄를 드러내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셨다.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죄로 죽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믿은 우리를 보내신다. 예수님처럼 담대함으로 저들에게 나가 저들의 죄를 드러내어 깨닫게 하고 유일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님께서 이미 우리 앞에서 그 일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그 일에 동참하도록 부르신다. 성령님께 나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