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양식과 추수할 때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사람들과 똑같이 이 땅의 삶을 사셨지만, 예수님은 사람이신 동시에 하나님이시며 하늘에 속한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이 땅에 임했다. 예수님으로 인해 영적 세계와 하나님의 나라가 조금씩 이 땅에 풀어지기 시작한다.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4)
비록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신지에 대해 알려주신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같은 모양으로 사시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이 세상에 따라 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계신 영적 세계가 있고 자신은 그곳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당신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영적 세계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곧 죽을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양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 오신 생명의 근원이다.
이 세상의 죄를 드러내시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선포하시고, 메시아의 표적들을 행하시고, 죄인들을 부르시고, 피를 흘려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고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영적 양식이다. 그리고 오늘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오신 것도 그녀와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것도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예수님의 영적 양식인 것이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5)
세상의 추수만을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적 눈을 뜨고 영적 세계를 보면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될 밭을 볼 수 있다고 하신다. 육신을 위한 양식을 추수하는 것이 아닌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영혼 구원의 추수이며 이 땅에 속한 추수 때가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추수할 때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할 많은 영혼을 준비시켜 두셨고 이제 그들을 구원할 때라고, 복음을 전하므로 믿고 구원받을 자들을 모을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구원의 추수가 시작될 것을 의미하신다.
영이 죽은 사람들은 육의 눈으로 보이는 이 땅의 일들이 전부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짜 현실”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영적 세계가 있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죄로 죽어 죄 가운데 살아가며 영원한 죽음으로 달려가는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계획하시고 친히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성자 예수님께서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사탄을 멸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지금은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믿어 거듭난 크리스천들 가운데서와 여전히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일하고 계시는 것이 영적 세계의 일이며 모두가 깨닫고 봐야 하는 “진짜 현실”이다. 거듭난 크리스천들은 성령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 거듭난 자 안에 내주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구원에 합당한 자로 성화를 이루도록 이끄시며 구원을 이루어가신다.
·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먼저 구원받은 거듭난 자들을,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로 부르시고 당신의 일에 동참시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으시고 오직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셨던 본을 보여주신 것과 같이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거듭난 자들의 영적 삶이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36-38)
예수님은 제자들과 거듭난 우리들을 추수하는 자로 보내신다. 이미 삯도 주셨다고 하신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우리의 삯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것 중에 구원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을 소유한 자만이 구원하러 보내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통해 나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은혜이며 좋은 것인 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죽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그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또는 하나님께 순종을 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신다. 한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그 기쁨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온전한 기쁨은 얼마나 크겠는가?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이 돌아올 때 그 기쁨과 영광은 얼마나 크고 놀라울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로 그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추수할 자로 부르신다고 하신다!
그 기쁨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노력에 숟가락만 얹어 그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인가! 전도하는 일은 우리의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영의 양식임이 틀림없다.
열매를 추수하기까지 심고 노력한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이 믿어 구원받는 일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영혼 구원의 열매를 얻는 것이 아님도 알 수 있다. 내가 구원받게 되기까지 나에게 영적인 영향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내 마음대로 살았던 내 삶의 중간중간에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사건들이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 거의 모든 크리스천이 그들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가운데 일하셨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뜻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하셔서 그것들을 친히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님을 통해 일하시며 구원을 이루어가신다. 한 영혼이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천사들과 일꾼들을 보내시고 중보자들을 세워 기도하게 하시고 여러 환경까지도 사용하셔서 그의 삶의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심으로 구원의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 이 세상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순종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조상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열매가 우리의 구원인 것이다.
이로 보건대 구원은 복음을 전하는 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명 추수하는 때가 있고 구원의 열매를 거두는 때가 있지만 한 영혼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그의 삶 가운데서 일하시며 구원을 이루신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녀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일하셨다. 예수님과 만나 대화하며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쪼개지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시간을 위해 그녀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남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일하시고 그녀가 만났을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셨다. 그녀의 수치스러운 삶과 고통스러웠던 환경을 통해서도 그녀의 마음이 구원에 이르도록 만들어 가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그 여인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줄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일하셨고 하나님의 추수할 시간이 되어 우물 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는 순간의 그 행동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날 수 있도록 창세전부터 그리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천국에 이르기까지 성삼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복음을 전해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의 구원의 과정 중 하나님의 추수 도구로 사용 받은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자들이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될 이유이다. 또한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이미 구원받은 우리에게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셨던 예수님과 같이 추수할 자가 되라고 부르신다.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받도록 준비해 주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믿고 구원받게 하여 추수의 열매로 거두라고 우리를 일꾼으로 보내셨다. 어찌 가만히 앉아 있으며, 어찌 주저하겠는가! 영적 눈을 들어 이미 희어진 밭을 보고 달려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추수를 마치는 날 추수의 기쁨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으로 동참해야 한다. 죄로 죽은 이 땅과 육을 위한 일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 가는 일이 전도이고 선교이며 크리스천들의 영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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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만 구하는 사람들과 구원의 은혜
갈릴리에서의 두 번째 표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심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4-45)
예수님께서 고향인 갈릴리에 돌아가셨더니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중심을 아신다. 갈릴리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진짜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예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영접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인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보았기에 자신들에게도 그런 일들 해주시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48-50)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아들이 살아있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3)
병든 아들이 있는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는 것도 들었을 것이다. 신하가 예수님께 찾아가서 자기 집에 오셔서 병든 아들을 고쳐 달라고 청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상황과 신하의 마음 중심까지 모두 알고 계셨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구하는 것은 생명을 주실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와 욕심을 채울 표적과 기사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말도 안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죽어 죄의 권세에 묶이고 사탄의 자식들이 되어 어둠 가운데 종노릇하며 살면서도 자신들의 죽음과 비참함을 깨닫지도 못하여 저들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보시며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얼마나 애통해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을까? 얼마나 안타까우시며 거룩한 분노로 고통스러우셨을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의 자리를 펴시고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사람들을 그리로 불러 모으신다. 오직 믿음으로 그 은혜의 자리에 터를 잡고 서는 자들은 죽음을 이기고 새 영과 새 마음을 받고 새 생명의 새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선물을 가지시고 예수님께서 이 사망의 그늘로 직접 찾아오셨다. 그리고 영생을 주실 메시아를 구하지 않고 오직 죄 된 욕심을 채우려는 표적과 기사만을 구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참아주시며 긍휼을 베푸시며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셔서 저들로 보고 깨닫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또한 사람들이 온갖 병과 환란과 고난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치료해 주셨다.
신하가 예수님께서 아들이 살았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떠났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아들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의 구원은 구할 수도 없는 자격 없는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이다. 그 은혜가 아니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이 얼마나 놀라운 감사와 감격의 은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