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심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16-21)
(1) 고난에 압도되어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함. 예수님을 부르지 않았다.
(2) 예수님께서 다가오심 – 모든 것을 아시고 보이지 않아도 항상 함께 하신다.
(3)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며 연단하신다.
(4)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심 – 예수님은 문제보다 크시며 문제를 밟고 그 위에 계신다.
(5) 예수님은 하나님이심 -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운 존재시다.
(6) 예수님과 관계 맺음 –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7)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함 – 예수님을 배에 영접하여 고난을 잠잠케 하심을 경험한다.
(8)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목적지에 도착함 – 주님과 동행함 = 성령님과 동행함
어린아이의 작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피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떡과 물고기를 떼어 자신들에게 주시고 무리 지어 앉아 기다리는 이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해 주게 하셔서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의 남은 떡과 물고기를 거두는 기적을 경험한 후에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이동한다. 밤이 되어 사방이 어두운데 큰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14장 24절에는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을 때 제자들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제자들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표적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예수님께서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자연도 예수님께 순종하는 예수님의 능력을 직접 목격했다. (마가복음 4장 39절) 하지만 그런 것은 바로 눈앞에 몰려오는 고난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파도와 싸우는 제자들의 머릿속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표적을 경험한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자들에게는 점점 더 짙게 저들을 삼키우는 어두움과 금새라도 배를 뒤집고 자신들을 삼켜버릴 것 같은 큰 파도 앞에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고난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사역하다가도 고난을 맞닥뜨리면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온통 고난에 빼앗긴 채로 스스로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애를 쓰다가 넘어지고 절망에 빠진다. 예수님을 찾아야 할 때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을지라도 나에게 닥친 고난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배에 함께 계시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을 아실 리 없다고, 그러니 도와주실 수도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억울해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분노를 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제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시고 저들과 늘 함께하셨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무소부재의 능력에 제한을 받으셨지만, 영으로는 저들과 늘 함께하시며 저들의 모든 것을 아셨을 것이 당연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고난을 겪는 순간에도 함께 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았지만, 제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계셨고 친히 저들에게 다가오고 계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크리스천들에게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님으로 그들 안에 거하시며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히브리서 13장 5절) 그들의 영과 연합하여 언제나 동행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삶 가운데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지라도 시선을 그리스도 예수께로 향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을 따라 순종할 때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 어찌 믿는 자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고난이 시작된 후에야 오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님으로 거듭난 자 안에 거하신다면 어찌 고난을 받을 수 있는가? 고난이 오기 전에 성령님께서 그 고난을 피하도록 인도하셔야 하지 않을까? 어떤 고난은 성령님께서 피하게 하신다. 하지만 성령님이 함께하심에도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난이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정금과 같이 되도록 연단하시는 고난이다. 로마서 5장 3-5절에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과 환란을 통해 인내와 연단을 거쳐 마침내 소망을 이룰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과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고 하신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이다. 복음을 소유한 자만이 깨닫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환란을 만나고 고난을 겪으면 좌절하고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까지도 포기하지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을 깨닫고 실제로 경험하는 자들이다. 또한 고난 가운데 인내함으로 연단을 받으면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과 고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파도와 싸우고 있을 때 제자들의 시야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 두려워했다. (19절) 왜냐하면 날이 어두워 예수님의 형상을 알아볼 수가 없었고 예수님께서 거친 파도 위로 걸어오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두려운 분이시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여전히 온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 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시고 사람들의 이성을 초월하는 영이시며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고난을 밟고 걸어오고 계셨다. 예수님은 죄 된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는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친히 오셔서 죄인들의 구주가 되어주셨다.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20절)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파도 위를 걸어오는 두려움의 대상이 자신들의 선생이신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고 두려움은 기쁨으로 변하였다.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양들은 예수님이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임을 안다.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확인하는 순간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워 떨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거센 파도를 밟고 걸어오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그 어떤 고난과 환란보다 크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구주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사탄의 모든 일을 멸하신 분이시다. 그런 주님이 거듭난 크리스천 안에서 성령님으로 항상 함께 하신다. 그것을 믿음으로 성령님을 따라 사는 자들은 어떤 고난과 시험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의 시간이 다 차도록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다. 마침내 파도를 밟고 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에 오르시고 큰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제자들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거듭난 자들을 연단하는 모든 시험과 환란의 때가 차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배에 오르사 평안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성장과 성숙을 이루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세우시려고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이 고난을 겪도록 허락하신다. 이런 혹독한 훈련이 없이 거룩함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본성 자체가 죄가 되었기에 구원을 받았어도 이 땅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장 12절)는 말씀대로 혼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난을 통한 깨어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믿음의 결국 곧 혼(한글 번역은 ‘영혼’으로 되어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원어는 혼soul로 되어 있다.)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장 9절) 혼이 죄의 묶임에서 자유를 얻고 거짓에서 깨어지고 진리로 채워지기 위해서 고난이 필요하다. 고난을 겪음으로 인해 우리가 쌓아 올린 거짓 신념들이 깨지고 진리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고난 중에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고난이 유익인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예수님은 제자들과 늘 함께하셨다. 그리고 머지않아 당신이 승천하시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저들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목적지로 친히 인도하실 것을 알려주셨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1) 그러니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하심에 귀 기울이며 고난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