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 예수님의 살과 피 & 영생의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6:26)
오병이어의 표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물론 그것을 전해 들은 사람들까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표적을 보고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정확히 아시고 저들이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셨던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이 죽어 영적 세계에 무지한 사람들은 이 땅이 전부이고, 이땅에서의 생명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저들은 영원한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육신이 죽지 않도록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 저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는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당연하다. 병을 낫게 해주시고 귀신을 쫓아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어찌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셨던 이적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게 하는 표적이다. 그 표적을 통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 곧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 예수님이심을 깨달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초자연적 기적과 자신들이 얻어 누릴 것들에 시선과 마음을 쏟으며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니, 죄 된 사람의 죄성에서 흘러나오는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저들을 죽음에서 살려낼 수 있는 복음의 진리를 설명해 주신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27-29)
사람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먹는 양식은 썩을 양식이라고 하시며 그것을 얻기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치신 인자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주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무리는 예수님께서 이 양식을 주겠다고 하신 말씀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지만 묻는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답하시며 저들의 관심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알려주시려는 진리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리는 예수님께 집중하지 못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저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0절 이하에 무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인치신, 하나님이 보내신 인자임을 믿을 수 있게 하는 표적을 구한다.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에 대해 말한다. 자신들을 만나로 먹여준다면 그때 믿어주겠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보이셨던 많은 표적과 바로 전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을 경험했음에도 저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다. 저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저들을 로마로부터 해방하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의 명성과 특권을 회복시키고 평생 먹을 것을 공급해 주며 저들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도록 지켜주는 능력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2-33)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준 떡을 먹었다는 무리의 말에 모세가 준 떡은 하늘에서 내려준 떡이 아니었다고 정정해 주신다. 실제로 만나는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닌 이 땅의 것들로 만들어진 양식이었고 하루가 지나면 썩어버리는 것이었다. 무리는 만나와 같은 저들의 육신을 위한 양식 외에 다른 어떤 양식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저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참 떡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양식은 곧 죽어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한 썩을 양식이 아닌 죄로 죽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 떡이라고 알려주신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는 참 떡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무리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요청한다. (34절) 하지만 저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 떡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달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5-36)
예수님께서 무리가 달라고 요청하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참 떡이 무엇인지에 대해 밝히 말씀하신다. 그 참 떡은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적들을 행하심으로 표적을 보이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진리를 선포하시며 자신에 대해 정의하신다. 하늘로부터 내려진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죄로 죽은 세상을 생명으로 살리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자신이 생명을 주는 떡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죽은 자들에게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라고 선포하시며 죄인들을 부르신다. 또 무리에게 “너희들은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36)라고 말씀하신다. 무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말씀과 무리가 그 말씀을 듣고 해석하는 것은 마치 평행선과 같다. 전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과 영에 대해, 땅의 일과 하늘의 일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인 세계와 이 땅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길을 내시기 전까지) 죄와 거룩함이 겹칠 수 없기에 무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로 죽은 사람들은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주위에 믿지 않아 여전히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저들과 같다. 영이 죽었기에 아무리 영적 진리를 말해줄 지라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37-40)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4)
죄로 죽은 사람은 영이 죽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가 구원을 얻을 길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자들을 자신에게 보내주신다고 하신다. 44절은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오셨고,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예수님을 보고 믿는 자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을 자들을 보내신다는 뜻은 예수님이 전에도 말씀하셨듯이 자신은 아무 일도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한 일만 하신다는 뜻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모든 자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나, 선한 행동이나, 그 외에 어떠함으로 스스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보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는 길을 예비해 놓으시고 구원하시려는 자들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는 로마서 8장 29-30절의 말씀과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또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도다”라는 에베소서 1장 5절과 11절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하심은 온전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정의의 성품에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창세전부터 계획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여 영생을 얻는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과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를 미리 아시고 창세전부터 택하셔서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고 감사한가!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5-46)
45절은 예수님께로 와서 믿고 구원받는 자들은 먼저 아버지께 듣고 배운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다는 뜻이다. 예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까지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은 나중에 이루어질 수 있다. 한 영혼이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자신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사시는 거듭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 중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거듭나지 못했음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산다. 그래서 거듭난 자들은 구별된다.
예수님께서 46절에 하나님께서 인생 가운데 일하실지라도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또 이르시되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라고도 말씀하신다. 오직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만 하나님을 보셨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하나님의 영과 천사들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과 여러 환경과 말씀 등을 통해서 나타나기에 하나님을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일하심은 경험할 수 있다.
이제 당신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한 이야기 중에 여인의 삶(고난과 환란 중에도) 속에 일하시며 여인을 예수님에게로 보내셔서 믿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요한복음 4장 (1)의 묵상)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2)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시니 무리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죄를 짓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볼품 없는 모습이 저들이 임금으로 삼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훨씬 더 깊은 뜻이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죄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거짓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절대로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 거짓 신념에 따라 죄 된 행동을 하는, 진리와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죄이며 교만이다. 저들은 예수님의 부모를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어떤 예언과 증거들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거짓 신념을 삼아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러 오셨다고, 살려주겠다고 하시는데도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받을 수가 없다. 이것이 진리가 아닌 거짓에! 죄의 권세에 묶인 인간의 비참함이다. 죄로 죽은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의 죄사함과 부활의 능력이 아니고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거짓 신념들을 스스로 깨뜨리고 진리를 믿음으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죽어야만 죄성에서 풀어질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7-4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이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3-59)
예수님께서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생명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라 먹으면 죽지 않게 된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떡이니 자신을 먹고 영생하라고 하신다. 영생을 얻기 위해 참 떡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참 음료인 예수님의 피를 마시라고 하신다. 이 말씀에 52절에는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하며 60절에는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맞는 말이 아닌가? 하늘의 떡을 준다고 하면서 구원하시겠다는 것도 좋고 영생을 주신다는 것도 좋은데 갑자기 자기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머지않아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고 이 복음의 진리가 얼마나 지혜롭고 놀라운지 밝혀주시겠지만 지금, 이 말씀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66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된다.
예수님의 영에 속한 이 말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말씀은 너무도 중요한 복음의 진리이다. 47절에 예수님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하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에게 걸림이 되어 예수님을 떠나가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니, 듣는 자들이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은 복음 그 자체이다. 복음은 죄로 죽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는가? 떡과 물을 먹고 마실 때 그것이 내 몸 안에 들어와서 소화되고 내 몸에 흡수될 때 비로소 나와 완전히 하나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영생으로 거듭난다는 뜻이다. 57절에 설명되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한 생명으로 하나 된다는 뜻이다. 죄인으로 죽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자가 되는 것,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영생이다. 이 놀라운 구원은 영적인 것이며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진리에 대해 잘 기록해 주셨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 곧 “믿음”은 감정과 지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어떤 느낌이나 의지나 신념이 아니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어 내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내가 새 사람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 성령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마지막 날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에 참여하여 천국의 소망을 이룰 때까지 이 땅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 자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 삶을 살며 구원을 이루는 과정(성화)를 거처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새 생명으로부터 변화와 성장과 성숙을 이룬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그의 내면과 삶에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손에 들고만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복음을 믿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역사하신다. 복음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다. 나의 의지나 내 신념이나 나의 결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을 때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내 안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예수님께 나가서 믿고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고 은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의 삶 가운데 전도자를 보내시고 기도하는 자들을 세우시고 상황들을 사용하셔서 그를 부르신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복할 때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말씀을 배우고 공동체에서 훈련받고 양육 받으며 하나님의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듭나는 순간 바로 천국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 땅에서의 삶을 살게 된다. 54절에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는 말씀처럼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예수님께서 영생으로 다시 살려 주실 때까지 이 땅에서 거듭난 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하는 것이다.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육에 속한 것은 아무것도 살릴 수 없다. 육은 생명이 죽었으므로 곧 썩어 없어질 것이기에 무익하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진리이며 생명이기에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죄 된, 영이 죽은 무익한 육에 속해 죄성을 따라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성경을 읽고 진리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내 의지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닌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적 세계에 속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어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영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70-71)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로 키우시려고 많은 사람 중에 잘 골라서 부르셨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시고도 그를 열두 제자 중에 두신 것은 그를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일부러 그가 구원받지 못하도록 만드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도록 예수님을 배신하는 역할을 가룟 유다가 한 것이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함께 먹고 마시며 모든 표적과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 그랬을지라도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영생의 말씀이 아닌 돈에 대한 욕심과 도적질로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교회에 다니며 크리스천과 같은 무리에 속해 크리스천의 삶을 따라 산다고 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65절의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교회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주권적 은혜 안에 가룟 유다는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마귀라고 하신 것은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고 육신의 죄의 정욕에 사로잡혀 죄의 왕 노릇 하는 사탄이 그에게 들어가 자신을 팔게 될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2장 3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68-69)
베드로의 멋진 고백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이 되어 예수님을 떠났는데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다고 고백한다. 역시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자격이 있다. 그렇지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이 말씀을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영적 진리들을 제자들 역시 깨달을 수 없다. 이 고백은 베드로 자신의 고백이 아닌 성령님께서 이끄신 고백일 것이다. 그리고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보내신 자들이 분명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자들이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하기에 어려울지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되는, 이 “영생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들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온전한 제자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