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도 믿지 않음 & 죄된 본성으로 외모로 판단함 & 생수의 강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실수록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지에 대해 궁금해하며 여러 가지 주장을 하였다. 유대 영적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했다. 그것을 잘 아신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눈을 피해 유대를 떠나 갈릴리에 거하셨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3-4)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놀라며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같지 않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형제들은 예수님과 함께 자라면서 훨씬 이전부터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다른 점들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는 분이니 저들과 확실히 구별된 삶을 보여주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권위의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것을 목격하면서 형제들은 예수님을 세상 임금으로 세우려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은 예수님의 친형제라는 것으로 인해 특별한 감정과 기대를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상황이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돌아갔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 충분히 임금이 되실 수 있는데, 아니 정말 메시아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드는데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갈릴리에 숨어 계시니 형제들이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예수님에 관한 많은 소문도 들으면서 형제들도 예수님에 대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침, 초막절이 가까우니 형제들이 예수님께 유대로 가서 능력을 행하며 당당히 제자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라고 한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대로 하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맞다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가서 자신을 증명하고 소문을 잠재우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6-7)
형제들의 권유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명절에 올라가지 않으시겠다며 형제들만 올라가게 하신다.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일들만 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기에 어느 때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한다. 아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유대 영적 리더들은 이미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혜롭게 자신을 저들로부터 숨기시며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사역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함께 사시지만, 이 땅에 속한 삶을 사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영적 세계에 속한 삶을 사신다. 영적 세계에 무지한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만 보며 순종하는 삶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하기에 세상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하신다. 그렇다. 예수님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선포하시고 저들이 그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어 죄로부터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죄인들은 자신들의 영적 실상과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자동으로 미워하고 거절하고 대적한다. 어두움은 빛이 비치는 순간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빛을 두려워한다. 빛은 죄를 드러내기에 죄인들은 빛인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유대 영적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너무도 죽이고 싶어 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이적과 권위의 말씀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감히 자신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죄까지 거침없이 드러내시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향한 미움과 증오로 이를 갈고 있다.
예수님께서 죄를 폭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들에게 살길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나오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세례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 정작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야 하는 영적 지도자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자신과 사람들을 속이며 위선자로 살면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4-17)
형제들이 먼저 명절에 올라간 후에 예수님도 드러내지 않으시고 올라가셨다. 명절 중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찾아다녔고 많은 사람은 유대 영적 지도자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그가 누구신지에 대해 수군거린다. 더러는 좋은 사람이라 하고 더러는 무리를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한다. (12)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고 그분의 가르치심에 놀라워한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믿으며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아는지에 관해 묻는다. 저들은 진리를 듣고도 그 진리를 가르쳐준 사람의 학벌을 따지며 진리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놀라워했음에도 그 가르치심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오신 목적대로 진리를 가르치시며 저들이 죄인임을 폭로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임을 트집 잡아 진리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의 교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답하신다. 만약 저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주시며 가르치심을 듣고 순종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인지 분별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은 나의 지혜나 나의 능력이나 나의 판단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믿을 때 말씀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가 아니신가? 그런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배우지도 못한 자의 가르침이기 때문이 아니라 저들의 마음이 죄로 가득하며 강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시기 때문에 자신은 진실하며 불의가 없다고 하신다. (18)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저들의 죄 된 본성이 빛인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의 죄 된 본성은 진리의 말씀이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 자신의 죄를 대면하는 일이 너무도 두렵고 아프기 때문인데 저들이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본능적으로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죄를 숨기기 위해 진리를 듣고도 진리가 아닌 것들, 본질이 아닌 것들을 내세우며 진리를 외면 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외모, 곧 배우지 못한 것을 운운하며 자신들의 죄를 숨기려 하는 것이다. 저들은 이런 죄의 본성에 따른 자신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둠이 빛에, 죄가 진리에 반응하는 것은 영적 세계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19)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23-24)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치심을 듣고 놀라면서도 진리를 받으려 하지 않는 저들의 죄를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저들이 유대인으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임에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죄를 드러내시고, 또한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저들 마음속의 죄를 폭로하신다. 자신들의 죄를 찌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리는 누가 예수님을 죽이려 하냐며 예수님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한다.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니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들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가? 전혀 아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저들이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의 말씀이 빛으로 저들에게 비추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자신들의 죄 된 본성대로 대적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헛소리하며 반대로 예수님을 공격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다는 이유로 예수님에게 분노하고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고 답하신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서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이적에 놀라워하며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선한 일인 줄 알면서도 안식일에 그 이적을 행했다는 이유를 들어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예수님은 저들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참뜻도 모르고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안식일을 잘 지킨다고 자신과 사람들을 속이는 저들의 죄를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라고 말씀하시고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는 일이라면 할례를 행하는 일은 얼마나 더 큰 일을 하는 것이겠는지를 물으신다. 또한 저들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허락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저들이 모세에게 그렇게 순종한다면,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분이 하신 선한 일로 어찌 안식일을 어겼다고 하며 예수님에게 분노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표적도 행하시고 많은 가르치심을 통해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밝히 알려주셨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폭로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려는 목적만을 위해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는 것을 죄목으로 삼아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이 외모로 판단하는 저들의 죄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자기들의 죄 된 본성을 따라 자기들의 뜻대로 해석하며 정죄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28-29)
예루살렘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유대 영적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찾는 자임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드러내놓고 가르치시는데도 잡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수님을 잡으려는 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인정하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자기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는 아무도 그분이 어디서 오는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에 저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하신다. 예수님은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하신다. 메시아가 오실 때는 아무도 어디서 오는지 모를 것이라는 말이 맞다고 답하시며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라고 알려주신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수님은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후에 구원받은 자들의 영이 살아나고 비로소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떠진 후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자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지만 아직 예수님이 잡히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 아무도 예수님을 잡지 못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에 대해 수군거렸고, 그것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부하들을 시켜 예수님을 잡아 오라 명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승천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때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갈 수도 없다고 하신다. (33-34)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당연히 깨닫지 못한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37-39)
명절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성령님에 대해 외치신다. 목마른 자들을 부르신다. 많은 무리가 성전으로, 회당으로, 산과 들로, 바닷가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듣는 것은 저들이 목마르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에 대한 갈급함 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아직은 영적인 것에 대해 깨닫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이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저들에게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예수님께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신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는 자들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거라고 외치신다. 예수님은 곧 오실 성령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과 그분이 오시는 것에 관해서는 성경을 통해 증명될 것도 알려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난 자에게는 성령님이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며 마르지도, 멈추지도 않고 항상 넘쳐흐르는 강같이 그 사람의 내면과 삶 가운데 일하시며 생명으로 그를 충만케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통해 생명이 세상으로 넘쳐흘러 세상을 구원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시며 일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성령님의 일하심에 순종하며 성령님을 따라 살면 된다.
예수님께서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올 거라고 하신다. 왜 하필 “배”일까? 묵상하는 중에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 3장 19절의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배는 보통 음식을 먹는 것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지만 사도 바울이 말씀하시는 것은 멸망을 받는 죄인들은 그들의 배를 마치 신을 섬기듯 온갖 정욕과 욕망과 우상들과 죄들로 채운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들의 영적 목마름과 굶주림과 공허와 상실감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으로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고 그 배를 신으로 만들어 멸망으로 이른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람들이 결국은 그렇게 멸망에 이룰 줄 아시고 저들을 그 죄에서, 멸망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인 살과 피를 사람들에게 내어주어 그것을 믿음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셔서 그들의 배가 죄와 우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성령님의 생명의 역사가 넘치도록 해주시겠다는 복된 소식,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는 다시 요동한다. 예수님을 선지자라, 그리스도라 말하는 자들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베들레헴이 아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며 서로 쟁론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잡지 못한다.
그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0-51)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이 보낸 부하들이 돌아오자 어찌 예수님을 잡아 오지 못했는지에 대해 추궁한다. 예수님을 잡으러 갔던 부하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께 손도 대지 못하고 도리어 그 권위의 말씀에 놀라 무리와 함께 말씀을 듣다가 돌아왔다. 그러고는 영적 지도자들에게 이때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부하들에게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며 화를 내며 예수님과 따르는 무리를, 율법을 모르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한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이 땅을 구원하시려고 메시아가 오셨는데 그 메시아를 죽이려고 가장 앞장선 자들이 영적 지도자들이라니 말이다.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거듭남의 진리를 배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미워하며 죽이려는 영적 리더들에게 율법을 들어 예수님에 대해 심판을 하기 전에 예수님의 말을 먼저 듣고 그의 행한 것들을 잘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권면한다. 이에 영적 지도자들은 니고데모도 갈릴리에서 왔느냐며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을 모셔다가 정말로 갈릴리에서 태어나셨는지 여쭤보면 예수님께서 성경에 예언된 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도 저들은 예수님이 어떻게든 메시아가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기만 원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아볼 생각도 없다. 그냥 예수님을 죽이는 데 필요한 것만 믿고 그것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죄인들은 죄 된 본성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이고 예수님은 죄로 죽은 저들을 살리고 영생을 주시려고 스스로 죽으러 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