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 나는 세상의 빛이라 & 아버지와 아들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1)
7장 53절에는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갈 때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신다. 예수님에게는 편히 누우실, 머리 두실 집은 없으시지만 기도하시는 산,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시며 새 힘을 얻으시는 산이 있다. 감람산은 예수님에게 그런 영적 사역의 베이스였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고, 특별히 잡히시기 전 마지막 기도를 하시는 곳이고, 승천하신 곳이기도 하니 감람산은 예수님께 특별한 곳임이 틀림없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적 베이스가 필요하다. 영적 세계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 우리들도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 베이스를 만들고 분주한 세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내 혼과 육을 영에 순복시켜 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3-5)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려 고발할 조건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시험한다. (6)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음행하던 여자를 잡아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우고 간음한 자는 돌로 치라는 율법을 내세우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지 묻는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기에 모두가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하실지 들으려 숨을 죽이고 기다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 있는 백성들 대부분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려 잡아가려고 한다는 것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절날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은 여인을 그것도 성전으로 끌고 와서 성전에 피를 흘리도록 돌로 치게 하려는 것은 누가 봐도 율법을 어기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던 백성들은 과연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진심으로 알기를 원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상황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모두 궁금했을 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신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상상해 보건대 그곳은 점점 더 조용해지며 모두가 예수님의 행동에 주목하며 무슨 말씀을 하실지에 모든 촉각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잠시 땅에 글을 쓰시는 행동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운 것을 보고 놀라고 산란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만들고 고조 된 분위기를 가라앉게 했을 것이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8)
예수님을 잡으려는 자들이 다시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시고는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른들로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여자만 남게 되었다. (9) 예수님을 시험하던 자들까지 떠나갔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말씀의 권위와 능력이 사람들의 숨겨진 죄까지 밝히 비추시며 저들의 양심을 찌르신 것이다. 또한 아래와 같은 진리도 함께 선포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누가 과연 이런 답을 주실 수 있을까!
(1)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심은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은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여인을 유죄로 판정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죄를 묵인하실 수 없다.
(2)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라고 말씀하심은 여인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자들도 죄인임을, 비록 간음죄는 아니더라도 혹은 죄가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모두가 죄로 인해 죽어야 마땅한 자임을 폭로하신 것이다.
(3) 예수님의 공의와 정의로운 성품은 여인의 죄를 묵인하실 수 없으셔서 돌을 던지라고 하셨지만,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던지는 돌로부터 여인을 구해주시고 여인으로 죄에서 떠날 기회를 주셨다.
(4)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인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절과 성전을 피 흘림으로 더럽힐 수 있는 죄도 막아주셨다.
(5)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임을 나타내셨다. 율법을 통해 죄를 다루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방법으로 율법이 완성될 것을 미리 나타내신 것이다. 여인이 율법으로 정죄 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기회를 주셨다.
(6) 예수님만이 심판자이심을 나타내셨다. (요한복음 5장 22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0-11)
예수님께서 여인을 고발하고 여인을 정죄하는 자가 없냐고 물으신다. 여인이 없다고 답하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사람들이 돌을 던져 여인의 간음한 죄를 정죄하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인을 율법에 따라 당장 정죄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율법이 돌을 던져 죽이라고 정한 죄를 지었음에도 돌을 맞지 않은 여인이나, 간음한 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음에도 돌을 던지지 않고 돌아간 자들이나 모두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닌가? 예수님의 한 말씀으로 율법이 온전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율법은 죄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고 도리어 죄를 드러내는 것임을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이다. 이제 율법이 아닌, 사랑과 공의가 함께 적용되는 완벽한 죄사함의 법이 나타났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말씀을 읽고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에 처한 여인이 불쌍해 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 앞에 끌려왔기 때문에 여인은 당연히 죄 사함을 받았을 거라고 판단할 것이다. 또한 무슨 죄를 짓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과 예수님이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공의로운 판단이 아니다. 요한복음 5장 (1)의 38년 된 병자에 관한 묵상과 같이 이 여인도 아직 구원에 이르는 죄사함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구원에 이르는 죄사함은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직 여인이 그런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시는 이야기들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예수님께 죄 사함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성경은 그들의 믿음이나, 죄를 떠나는 행동의 변화나, 고백 등에 대해 기록함으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이미 가르치시고 준비하셔서 예수님께 보내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을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임을 정확히 말씀하신다. 하지만 38년 된 병자와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이야기에만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회개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아신다. 여인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믿음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여인인지 아닌지 예수님은 아시고 그것에 따라 예수님만이 공의로운 판단을 내리실 수 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여인의 마음은 뉘우침과 회개가 아닌 재수 없게 잡혔다고 생각하고, 같이 간음한 남자는 왜 잡지 않고 자기만 잡는지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돌아가서 다시 간음과 다른 죄들을 죄책감 없이 지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부분들을 예수님은 아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판단하시는 것만이 옳으시고 의로우시다. 예수님만이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이 말씀의 주인공은 여인이 아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결코 아니다! 도리어 아무도 예수님을 시험할 수 없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 사함과 심판하는 권세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만 있다는 것이 더 맞는 주제일 것이다. 예수님은 조건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먹고 마시는 자만 주님과 하나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지만, 그날 잔치에 합당한 옷을 입고 나타난 자만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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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진리를 그대로 선포하시는 말씀으로 가득하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증언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영적 진리와 죄로 죽어 어둠에 거하는 사람들의 형편과 저들의 죄를 폭로하신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인 복음에 대해 선포하신다. 유대인들은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이 땅에 살면서 영이 죽어 영적인 세계에 무지한 상태로 죄 된 본성에 따라 공의가 아닌 외모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에 그 말씀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둠에 속한 자들로서 빛인 예수님을 미워하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고발하기 위한 질문들만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서로 방향과 뜻이 일치하지 않는 엇갈린 대화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올수록 예수님은 점점 더 자세하게 영적 진리들을 가르치시고 죄를 드러내시고 복음을 선포하신다.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믿음으로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은 아무도 그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깨닫지도 못하는 영적인 말씀을 왜 그렇게 하시는 걸까? 그 말씀들로 인해 결국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줄 아시면서도 말이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에게는 저들을 구원할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그 진리를 선포하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사람들로 예수님께 들었던 모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고 그 말씀이 깨달아지게 하실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의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지키는 제자가 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지키게 하여 제자로 삼는 자들이 될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는 저들에게 계속해서 진리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8장 12절 ~ 30절: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
(1) 예수님께서 세상에 빛이다. 빛인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다. (12)
·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의 빛을 얻어 빛이 된다. 그 말씀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명을 가지고 거듭난 자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므로 빛이 되고 더 이상 어둠에 거하며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빛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새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죄로 죽은 채로 어둠에 거하며 죄 가운데 살 것이다.
· 생명을 얻고 빛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외치시는 대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로 죽은 자신들의 비참한 형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영이 죽었기 때문이고 거짓의 아비 사탄과 악한 영들이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도록 거짓 자아를 만들게 하고 그것을 자신이라 믿으며 살도록 하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로 저들의 마음이 점점 더 강퍅해지기 때문이다. 죄 된 본성이 본능적으로 죄의 삯은 죽음임을 알기에 두려움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없고 그 안에 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깨달을 수 없어서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종노릇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죄인임이 깨달아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죄인임이 깨달아져야 회개할 수 있고 회개를 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2)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증언하시는 것은 참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 자신만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두 분이 예수님에 대해서 같은 증언을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언은 참되시다. (14, 17, 18)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 증언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고 말한 것에 대해 답하신 것이다.
·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오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은 아무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만 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들은 진실이 아닌, 자신들이 아는 것 안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제한된 지식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오신 것을 아는 것과 예수님이 사람임을 확신하는 것과 예수님이 자신들이 정해놓은 메시아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 등등으로, 곧 진실과 공의가 아닌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예수님은 영적 세계와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아시지만, 죄로 영이 죽은 사람들은 영적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3)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예수님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신다. (15)
·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영적인 진실을 알지 못하기에 정확하고 공의로운 판단을 할 수 없다. 또한 죄 된 본성으로는 진리에 따라 공의롭게 판단할 수 없다.
(4) 만약 예수님께서 판단하신다면 그 판단도 참되니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16)
·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참되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스스로 하시는 것도 참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만 이루신다.
· 사람들의 판단과 예수님의 판단은 차원이 다르다. 사람들은 죄 된 본성대로 판단하기에 그 판단은 의로울 수 없다. 예수님의 판단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이기에 의롭다.
(5) 예수님을 아는 자는 아버지도 알 것이고 예수님을 모르면 아버지도 모를 것이다. (19)
· 예수님께 와서 구원받는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보내는 자들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예수님께 오는 자는 당연히 하나님을 알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알게 해주시기에 예수님도 알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바리새인들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 하신 답이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은 예수님도 아버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6) 예수님은 가실 것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죄 가운데 죽을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사람들은 가지 못한다. (21)
·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곁으로 가실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 죄를 사함받지 못하면 아무도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없다.
·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자결하려는 것인지 묻는다. 예수님은 메시아 이 시기에 죽으실 수 없다. 그래서 죽고 부활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오신 곳으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7) 사람들은 아래에서 났고, 예수님은 위에서 나셨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하였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것이다. (23, 24)
· 예수님은 당신을 저들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위는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뜻하고 이 세상은 죄로 죽은 곳을 뜻한다.
· 저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것을 경고하신다.
·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이 예수님께 누구냐고 묻고 예수님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라고 답하신다. (25)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메시아라고 말씀하셨다. 저들이 믿지 않은 것이다.
(8)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말씀하실 것이 많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참되시기에 그분께 들은 것을 세상에 말씀하신다. (26)
· 예수님이 사람들의 영적 무지와 죄와 믿지 못하는 것들에 관해서 하실 말씀이 많지만,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신다. 하나님은 참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 저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 아버지를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들은 도무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
(9) 사람들은(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야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되고 예수님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8)
· 죄인들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저들의 죄를 사해주신 후에야, 저들이 죄에서 자유를 얻은 후에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가르쳐주신 모든 말씀이 사실이고 진리임을 지금은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
(10)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항상 함께하신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하신다. (29)
·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지금 사람의 몸으로 사람들 앞에 서 계시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들의 몸으로 오셨지만, 두 분은 항상 함께하는 한 분이심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같은 일이다. 그리고 함께 일하신다. 예수님이 아들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지만 그 하나님의 뜻은 또한 예수님의 뜻이기도 하다.
· 거듭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뜻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처럼 거듭난 자도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께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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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나는 요한복음 8장 12절을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라는 동요에 맞추어 노래를하면서 외웠다. 나도 모르게 이 구절을 산토끼 노래에 맞추어 흥얼거렸는데 노래와 말씀이 찰떡같이 잘 맞아서 쉽게 외웠고,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산- 토끼 토끼야 어- 디를 가느냐 깡- 총 깡- 총 뛰면서 어- 디를 가느냐
나- 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며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